옷 벗은 신부 박연호(사랑과 자유)

자연이 나의 친구다.-박연호 신부의 도덕경

리라568 2023. 11. 16. 09:33
728x90
반응형

1 자연이 나의 친구다





도덕경 1장은 절대세계인 무無의 본질인 도道에 대하여, 2장은 상대세계인 유有의 본질인 덕德에 대한 언급이다. 

유의 본질이 덕이요 무의 본질이 도이다. 

그러기에 도가 덕을 낳고 다시 인을, 의를, 그 다음으로 예를 낳았다고 하는 것이다. 

아마 그 다음이 법이요, 마지막이 폭력 즉 힘일 것이다.

이는 점점 더 밖으로 향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 와는 상관이 없다. 

점점 분리 쪽으로 향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분리를 하면할수록 거짓도 많아지고 두려움도 커진다. 

이때 왕따라든지 살인이나 전쟁 등이 발생한다.

이 분리가 심해지면 난세가 되고 집으로 말하면 콩가루 집안이 그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하나를 향하는 것이 사랑이요 일치이기에 누구나 사랑을 원한다. 

그러나 일치 자체는 아니다. 

그 자체는 덕이라 한다. 

우주의 본질이 덕인 것이다. 

우주자체가 유기체란 말은 일치요 하나라는 뜻이며 그 본질이 참사랑이요 덕임을 나타낸다.

난세를 고쳐보려는 것이 정치인데 여기선 예의도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는 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보려고 하는데 이는 어리석은 짓이다. 

정치세계와는 달리 주먹을 쓰는 깍두기 세계에선 의리와 힘이 통한다. 

그만큼 인간적이고 친밀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여기선 힘이 다스리는 막다른 곳이다.

사랑만이 감동을 주고 생기를 준다. 

사랑은 일치와 하나를 가져다주므로 누구나 사랑을 원하고 바란다. 

사랑이 진실에 가깝고 의리나 예의나 힘은 더 거짓에 가까운 것이다. 

더욱이 정치나 힘은 완전히 거짓이다.

나는 세상의 원리를 힘으로 보고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하는 사람을 가장 어리석을 자로 본다. 

무엇보다 도와 덕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자만이 나의 친구가 된다. 

즉 자연自然이 나의 친구다.



2 영원의 눈, 전체의 눈



꿈속에선 시간관념이 없고 잠에 빠지면 시간과 공간이 둘 다 사라진다. 

현실에서만이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 

이와 같이 마음이 제 기능을 발휘하려들 때 이들이 필요한 것이다. 

마음이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면 현실 속에서도 시간이 사라지거나 공간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현실이 마음의 활동 무대인 것이고 이때 창조나 파괴도 가능하다.

마음먹기에 따라선 악에서 선을 이끌어 낼 수도 있고 선에서 악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이것은 선과 악의 근원이 하나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다른 말로는 현실과 사건은 중립이지만 마음이 개입하여 좋다 나쁘다 악이다 선이다, 라는 식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판단은 사실이 아닌 거짓이다. 

이들 판단이 모든 문제를 만들어 내는 판도라의 상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비록 신과 같은 존재일지라도 그에게서 얼마든지 비난받을 점을 찾아낼 수 있고, 

이와는 반대로 폭군이나 악인에게서도 칭찬거리를 발견해 낼 수 있다. 

부부사이라든가 정치계의 야당과 여당 사이에서도 이 사실이 잘 드러난다. 

결혼 전후의 사정이 이와 같지 않은가.

부정부패나 악을 들춰내다 보면 세상은 곧 망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이것은 전체로는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도 기독교 역사상 얼마나 여러 번 종말론이 등장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가. 

그와 달리 노자는 문제로 가득 찼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해결책 제시는커녕 

방관자나 은둔자로 산 것처럼 느껴진다. 

왜일까.

도덕경 2장을 보자. 여기서 그는 마음의 작용을 잘 밝혀 놓는다. 

즉 선과 악으로, 좋고 나쁨으로, 잘하고 못하고 식으로 갈라놓는 마음의 작용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마음이 전체를 한 눈에 보지 못함을 드러낸 것이다.

시간을 짧게 즉 단시간의 눈으로 보니 불행이나 고통이나 절망이 존재하는 것이지 장기적인 눈으로 보면 

그것들도 다 행복이나 만족을 누리기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누구나 부자나라라고 부러워하는 미국을 보자. 

그들의 선조들은 거지와 다름없었다. 

당시 누가 자기나라가 세계 제일의 부국이 되리라고 짐작이나 했겠는가.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을 선호한다. 

악역과 조역도 그만큼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면 사정이 달라질 텐데. 

물론 출연료나 대우도 똑같이 해줌이 마땅하고. 이는 실제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두 마음이 한눈에 전체를 볼 수 없다는데서 기인한다. 

즉 마음은 전체가 되거나 영원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잘 되어 간다고 보기는커녕 문제로만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시선이 1년이나 10년, 기껏해야 100년을 내다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라든지 우리집안 더 나아가 우리나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그 원인이다.

영원의 눈, 전체의 눈으로 보아야 조화요 기적이요 감동임을 알 텐데, 

이는 가능한 것인가. 

무심無心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노자는 이 무심의 시선으로 보았기에 애초부터 세상을 완전하고 좋다고 본 것은 아닌가. 

그렇기에 세상을 방관하거나 감상하는 자세로 산 것은 아닌가. 

이때 무슨 해결책이니 비판이니 하는 말이 나오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