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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 10

교도소로 다시 가다.

1. 간염으로 쓰러지다. **​ 양모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오래전에 퇴직을 하여 가정형편이 넉넉지는 않았다. 생모는 젊은 날에 무리를 하여 디스크 수술을 두번이나 하고 나니 몸이 비뚤어져 외출도 못하고 있었다. 그당시 기술이 허접한 것을 모르고 우린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그녀의 몸은 뒤틀리고 통증으로 고통받아야 했다. 너무나 순수하고 착한 분이 약으로 살아야 하니 나에게 늘 슬픔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나름 최선을 다해 소박하게 가정을 돌보니 남들이 보기에도 제대로 된(?) 가정이 된 듯 하였다. 어려서부터 엄마를 식모라 생각하라는 양모의 주장 대로 ‘에미야’라고 부르다 ‘엄 마’로 바꾸려니 입이 안 떨어지는 시절이었다.​ 야학이 잘 시작되어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계룡산 에서 M.T(membersh..

나의 일기 2023.04.21

노동야학과 노동상담소 개설.

1.나의 즐거움, 야학생활 ​ 맨 먼저 야간 학교를 시작한곳은 풍한 방직이 있던 유천동지 역이었는데 교회를 밤에 빌려 쓰는 조건이었다. 선생님을 모으 고, 수업시간표 대로 배치하고, 훈련시키고, 직접 교재를 만들고, ‘어떻게 자의식을 키우고 민주적인 방식을 배우며 자신의 사회적 환경을 극복 할 수 있는 인격을 형성해 갈 것인가? 3교대와 맞 교대의 장시간 노동으로 지친 그들을 즐겁게 올수 있게 할 것인 가’ 를 주요과제로 삼았다. 오랫동안의 준비 과정을 거쳐 선생과 학 생이라는 벽을 넘어서 선생은 배우며 가르치는 ‘강학’ 이라 하고, 학생은 가르치며 배우는 ‘학강’ 이란 개념을 세운 민주 야학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는 중국 모택동의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같은 가치에 두고, 서로 배우고 교류해야 균형감 ..

나의 일기 2023.04.21

교도소 밖도 교도소.

1.교도소 밖도 교도소. ** 숨통을 조여도 꺾일 수 없어 **​ 출소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한 발작 한 발작 사회로 걸어 들어온 나 의 발목엔 새로운 족쇄가 서서히 채워지는 답답함이 시작되고 있었다. 대학에 복학을 하니 난 알게 모르게 유명인사가 되어있었다. 담당교수에 담당 형사에 안기부 직원에 보안대 계장에 .........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것이 예사였는데 그렇다고 내가 하 던 일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이것을 운명 혹은 기질, 혹은 자의식이라 부르던 나의 삶은 계속 흘러가야 했고 누군가의 반대로 그만 두는 것은 가장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누가 자유를, 민주 를 본연의 가치로 그리워하고 환영하지 않겠는가! E.H Carr의 에 나온 유명한 문구처럼 ‘역사란 자유의 확대 과정’이며 덧붙..

나의 일기 2023.04.19

교도소는 살 만 하다.

1.교도소는 살 만 하다.​ 그 당시에는 국가 보안법에 저촉되면 면회가 금지 되고, 다른 사람과도 섞이지 못하게 되 어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유치장 주변을 서성이다 돌아가곤 하셨는데 교도소에서도 여전히 왔다가 그냥 돌아가시곤 하였다. 대전의 목동교도소는 일제시대에 세워진 유서 깊은 곳이었 다. “옷 다 벗어, 갈아입어”여자 교도관의 말투는 사뭇 권위적이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나의 방은 복도를 따라 양 옆 방을 모두 지나 화장실 목욕탕을 또 지나 방이 세 개만 있는 독채의 독방이었다.​ 유리창은 깨져 있고 전기불도 없고 매트리스는 더럽고 방구석에 양동이 물은 바닥까지 꽝꽝 얼어 있었다. 그때, 옆 감방의 어둠 속에서 “여보, 오셨어요? 식사는…….” 하며 끝없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

나의 일기 2023.04.14

재판하려면 다 외워.

1. 재판 연습을 하다.​ 드디어 나는 구속이 결정된 모양이었다. 혼자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기를 일주일..... 갑자기 담당형사가 오니 반가웠다. 너무 외로웠나 보다. 한편은 한 달 반을 같이 지냈다고 담당 형사와도 미운정이 들었나 보다. “자 준비하고. 위에서 다 듣고 있으니까. 이 자술서 순서대로 읽어. 재판연습 해야지!” 나의 자술서는 몇 백 장인데 어느새 거의 모든 내용을 외우고 있었고 담당 형사가 까먹을 때 마다 친절하게(?) 넘겨줘 두 번 만에 재판연습을 끝냈다. “너 국가 보안법 4조 위반이 니까 7년 살아야 되서 어쩌냐? 내가 면회 갈까. 시집은 언제 가냐.”농담까지 던진다. 위에 있는 사무실의 높으신 분이 흡족해 하는지 형사는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사라졌다. “야 인마, 네 엄마, ..

나의 일기 2023.04.14

물 고문 또 받다.(4)

가난하여 물로 배를 채워야 했던 친구의 어린시절 이야기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으로 기본 삶도 누리지 못하는 어린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나의 역사의식의 시작이었다. 해결적 대안은 책 몇 권으로 답을 내릴 수는 없었던 시기였다. 다만, 그들의 손에서 나는 점점 ‘국 가보안법 7조’를 위반한 간첩에 준하는 중범죄로 결론이 내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난 단 한 번도 사회주의와 북한에 대해 찬양 한 적이 없었다. 날짜를 기억 할 수도 없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한 뼘 정도 지상으로 연결된 유리창으로 첫눈이 날리고 있었다.​ ‘이번 가을을 잊었구나.’ 쓸쓸한 마음으로 눈 발을 보고 있는데 복도에 있던 전경은 신이 나서 그 당시 유행하던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노래를 흥얼거렸다. 같은 공간에 있는데..

나의 일기 2023.04.12

물 고문 받던 날.(3)

1. ** 유신정권 때 대학에 가다** ​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다. 이글을 쓰면서 유신정권 때의 정서와 문화를 떠올린다는 것이 얼마나 낯설고 까마득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지금은 대통령을 유뷰브로 공개 저격한다고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서 구타와 욕설과 고문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아닌가! 잘못된 것을 당당하게 느낀 대로 이야기 하고 집회를 통해 의사를 표현해도 최류탄과 물대포로 다치고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아닌가! 그러나 그때만 해도 내가 입학 한 충남대 문과대는 새로 입은 치마와 구두만큼이나 어색하고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기대한 것 보다 질이 떨어지는 교육내용, 눈을 번득이며 우 리를 지켜보는 잠바 차림의 아저씨들은 대학에서 숙식을 하며 아예 상주하고 있었다. 유신말기인 197..

나의 일기 2023.04.12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돼(?)

여행이전의 삶의 여행 ​ 1. ** 정원의 초목 옆에서 버지나아 울프를 노래하다 ** ​ 나는 1961년도에 온순하고 멋있는 그러나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버지와 인내심 많은 씨받이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50세가 넘기까지 부처님에게 온갖 치성을 드려 태어난 나는, 집안의 장남이어야 마땅했는데 불행하게도 딸이었다. 물론 첫째 아들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을 주관하던 양어머니는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핏줄이 아닌 줄로 굳게 믿고 계셨고 쫓겨나지 않으려는 나의 생모는 죽은 듯이 거짓말을 하여야 했다. ​ 그러니까 생모는 이미 다른 분의 아이를 임심한 상태에서 들어와 훗날 아이를 둘 더 낳은 것이 나와 남동생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 나에게는 이젠 꿈속의 동화 같이 아스라이 느껴지고 과거의..

나의 일기 2023.04.11

여권을 만들려면 아빠가 필요해(?)

1.여권을 만들려면 아빠가 필요해(?) 엉, 이럴 수가**​ 우리 동네 세 가구 중, 오른쪽 집에는 남동생 부부와 나의 어머니가 살고 계시다. 그 가족도 평소에 무위의 글과 삶을 보고 깊이 존경하고 있어 몽고여행을 가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의 여권 신청은 끝났고 시일이 촉박한데 아이들 여권은 생각지 않은 복병에 걸려 어려 웠다. 이혼 후 아이들의 친권자가 아빠로 되어있으면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엄마의 보증과 ‘아빠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증명’을 첨부하여야 한다고 하니 난감 하였다. 10여 년 전 남편과의 이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혼에 동의 해 주었을 때 물불을 가릴 상황이 아니다 보니 생긴 불찰이었다. ‘나 혼자 가야하나? 이번 여행은 아이들과 함께 가는데 의미가 있는데.……. ​ 사람이 만든 ..

나의 일기 2023.04.10

나는 두 아이의 엄마.

1.우린 모두 행복과 자유를 원한다. 우린 모두 뜻을 세우던 아니던 구도의 여행을 하고 있다. 조금은 더 행복해지고 조금은 더 마음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것이 구도와 다를 것이 없으므로. 그렇게 나를 일깨우던 삶의 순간에는 스승 무위 박연호 신부님이 늘 함께였음을 그분이 돌아가시고서야 더욱 명확하게 느껴졌다. 늘 깨우침은 시간과 마음이 필요하다. 수수께끼 같은 나의 배는 바람 따라 낯선 곳으로 떠나기도 하고 가슴의 항구로 다시 되돌 아오기도 한다. 여행은 풍경화처럼 고요하기도 하고 폭풍우처럼 거센 고통과 절망, 순수와 사랑, 인위와 무위가 왔다가 사라져 간다. 한 방울의 물방울이 똑 떨어져 강물에서 다시 바다에 이르는 파노라마 같기도 하다. 그 물방울은 지금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

나의 일기 20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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