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유신정권 때 대학에 가다**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다.
이글을 쓰면서 유신정권 때의 정서와 문화를 떠올린다는 것이 얼마나 낯설고 까마득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지금은 대통령을 유뷰브로 공개 저격한다고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서 구타와 욕설과 고문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아닌가!
잘못된 것을 당당하게 느낀 대로 이야기 하고 집회를 통해 의사를 표현해도 최류탄과 물대포로 다치고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아닌가!
그러나 그때만 해도
내가 입학 한 충남대 문과대는 새로 입은 치마와 구두만큼이나 어색하고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기대한 것 보다 질이 떨어지는 교육내용, 눈을 번득이며 우 리를 지켜보는 잠바 차림의 아저씨들은 대학에서 숙식을 하며
아예 상주하고 있었다. 유신말기인 1979년도였으니 곧 그 해 말 12,12쿠데타가 일어나 전두환씨가 대통령이 되었다. ‘광주항쟁’이 쉬쉬 소문을 타 고 전해오고 모든 언론은 군부가 장악하였으니 진실은 묻혀 있었다.
선배가 몰래 전해 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죽어간 어린 소녀와 임산부의 찢겨진 배에 피가 낭자한 시신 사진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북한 간첩의 사주’를 받았다며 그들을 폭도로 몰아 세워졌고, 역사의 진실은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었다.
2학년이 되어 전공을 역사학으로 선택하고, 한국의 경제구조의 문제점과 제3세계의 현안 그리고 독 재정권 하에서 자행되는 반인권적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빈부격차의 현실을 배워갈수록 점점 잠재되어있던 나의 반항기질이 일깨워지고 있었다. 미팅도 두어 번 하고 연애 같지 않은 연애도 두어 번 하며 소그룹 활동을 통해 역사공부에 몰두하고 있던 10월 어느 날 밤, 갑자기 한 밤중에 들어 온, 검은 양복에 검은 세단의 사나이들은 덜덜 떠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내 눈에 안대를 채웠다.
‘무슨 일이지? 꿈을 꾸는 것 만 같군. 잘못 한 것이 없으니 곧 돌아오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다리에 힘이 빠졌다.
한마디 ‘앗’소리도 못하고 날벼락을 맞았을 나의 엄마와 아버지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려왔다.
끌려간 곳은 후에 안일이지만 국가안전기획부 대공 분실에서 즐겨 쓰는 여관이었고 매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질문은 시작되었다.
“이XX 알지? 무슨 말을 했지? 언제 만났지? 무얼 공부했지? 그가 북한을 찬양했지?”이틀 이 지나도록 잠을 안 재우며 다시 하는 말
“야 이년아,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을 여기다 모두 적어. 하나라도 빼 놓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줄 알아?”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내 가 무얼 잘못했지?’ 긴장과 공포는 극에 달해가고 형사들은 한 사람씩 퍼질러 자면서 나는 화장실조차도 허락을 받고 가야 했으니 생리도 끊기고 몸은 말라가기 시작했다. ‘우당탕탕’ 소리에 놀라 형사들 눈치를 보니 자기들 끼리 속삭인다.
“김 XX 잡아왔어. 그 새끼 잡느라고 3일 철야 했네”
“너 잘 하면 내보내고 안 그러면 간첩이야. 최소 몇 년 살아야 돼 알아? 지금 까지 쓴 것 몽땅 다시 써. 이년아.” 이리하여 쌓여가는 자술서 높이만큼이나 이 상황 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웠으나 그때는 결코 그렇게 길고 긴 나 자신과 의 싸움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하였다.
2. ** 물고문은 물을 무섭게 한다.
결국 일주일 후 한 밤중에 다시 이동은 시작되었다.
눈을 가린 채 달리는 차 안에서
‘집 으로 돌아가는 구나……. 그럼 그렇지. 잘못한 것이 없잖아. 불온서적이라는 몇 가지 책 보 고 후배들 하고 공부한 것이 그렇게 죄는 아니지?’ 그러나 내가 도착한 곳은 지하 대공 분실 이었다.
그 사이 달이 바뀌어 썰렁한 11월의 찬바람이 스산하게 얇은 옷 속으로 파고드는 햇빛 없는 지하 방문이 열리고 매트리스 하나와 책걸상이 놓여 있었다. 그 후로 그 문은 늘 열려 있었으니 밖에는 전경 총각이 체육복 입고 나를 밤이나 낮이나 지키고 있 었다.
“양말 벗어!” 추위를 많이 타지만 위세에 눌려 한마디 말도 못하고 양말을 벗고 준비 된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여기는 또 어디란 말인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끔찍하게 느낄 겨를도 없이 취조는 시작되고 서울에서 파견된 전문가 아저씨는 연신 벗겨진 머리를 쓰다듬 으며 협박과 욕설로 일관하였다.
“너 이XX 만났지? 무슨 말을 했지? 그날 아니잖아, 북한 의 경제체제가 자본주의 체제 보다 우월하다고 했어? 안했어? 너 문교부장관 감이라며. 너 맡은 형사들은 너한테 다 의식화 된다더라. 그렇게 잘 아는 년이 기억이 안 난다는 게 말이 돼? “ 매일 매일 써 가는 자술서는 수천 장이 되어가고 끌려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잠을 설칠 때쯤에는 지금은 민주당 국회의원이 되어 있는 선배의 고함 소리에 깨기 마련이었다.
“야 이 새끼들아 잠 좀 재워. 잠재우란 말이야.”
뒤이어 비명소리와 몽둥이 소리가 바트러 지고 난 눈물을 참으며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끌려오는 친구들의 숫자는 늘어가고 비명소 리도 늘어가던 어느 날, 그나마 아침식사를 주지 않아 무슨 변화가 있으련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큰 고무신을 질질 끌고 책상 주변을 서성이는데 몰려오는 형사들이 외쳤다.
“옷 다 벗어”
평소에 여자라선지 심하게 때리지 않고 옆방의 남자 동료들처럼 옷도 벗기진 않았는 데.
“이년 눈 가려!” 팬티만 겨우 입고 추위와 공포로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끌려 간 곳은 고문실이 었다.
두 손이 묶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내 몸은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이년이 지 독해서 제대로 불지를 않아? 너 같은 년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도 된다 말이지.”
차가운 물이 얼굴로 쏟아지는 가 싶더니 급기야 코와 입을 틀어막는 거친 타월과 우악스런 막대기 가 숨통을 조여 왔다.
“울컥 울컥 왝 왝, 울컥 울컥 왝 왝” 숨을 쉬기 위해서는 코와 입으로 물을 먹어야 하는 ‘물고문’이 시작 되었다.
폐로 들어가는 물은 가슴을 찢는 아픔을 가져왔지만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물론 묻는 말에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그들도 굳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맛 좀 바라.’낄낄대며 고문은 진행 되었다.
그 날은 잡혀 온 모두를 고문하는 날이었다. 질식의 공포감은 1초가 천년 같이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눈을 가린 것은 고문 한 경관을 은 폐하기 위해 얼굴을 못 보게 하고 양말을 벗긴 것은 목을 졸라 자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 고문으로 몇몇 선배는 늘 기침을 해야 했고 코가 비뚤 어지거나 환청에 시달리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보다 자세한 내용은 '감옥으로부터의 소영' 이란 책으로 출간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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