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판 연습을 하다.
드디어 나는 구속이 결정된 모양이었다.
혼자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기를 일주일.....
갑자기 담당형사가 오니 반가웠다. 너무 외로웠나 보다.
한편은 한 달 반을 같이 지냈다고 담당 형사와도 미운정이 들었나 보다.
“자 준비하고. 위에서 다 듣고 있으니까. 이 자술서 순서대로 읽어. 재판연습 해야지!”
나의 자술서는 몇 백 장인데 어느새 거의 모든 내용을 외우고 있었고 담당 형사가 까먹을 때 마다 친절하게(?) 넘겨줘 두 번 만에 재판연습을 끝냈다.
“너 국가 보안법 4조 위반이 니까 7년 살아야 되서 어쩌냐? 내가 면회 갈까. 시집은 언제 가냐.”농담까지 던진다.
위에 있는 사무실의 높으신 분이 흡족해 하는지 형사는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사라졌다.
“야 인마, 네 엄마, 아빠가 검사실이며 경찰서로 매일 찾아온다드라. 여기 옷 갈아입어. 머리도 감고.” 수세미처럼 쩔어 붙은 머리카락 앞에 덩그러니 놓인 빨래 비누는 참 무력했다.
몇 달 만에 세수인가....... 부모님이 보내 준 옷을 보자 가슴이 덜컹하며 내려앉았다.
발등에 불을 끄느라 옷에 옮겨 붙은 불을 이제야 본 것 같았 다. 얼마나 걱정을 하였을까.
생모는 허리도 아픈데다 상심이 얼마나 클지. 소슬한 바람은 겨울로 넘어가 있었다.
바람에 아스라이 낙엽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지옥 같은 지하 감옥을 벗어나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유치장으로 가게 되었다.
이 ‘청람낚시계’라고 명명 된 사건은 1980년도, 충남 대와 공주사대를 중심으로 역사 공부 하던 100명 이상의 학생이 관련된 사건이었다. 광주민주항쟁이후 반항적인 민심을 공포정치로 밀어 붙이기 위해서 전국적으로 반국가 단체를 만들어 내야 했던 전 두환 정권의 고심작이었다.
이름이 부쳐지는 과정조차 구속된 대 선배가 낚시를 좋아하고 ‘후배들은 선배 보 다 뛰어나야 한다.’ 는 말을 했다하여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그 의미인 청출어람 (靑出於 藍)이란 말을 줄여 ‘청람낚시계 사건’ 이라 형사들이 만든 모양 이었으니 90%의 조작으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 사건으로 구속 된 사람은 의외로 나와 친구 진숙이, 선배 이XX씨, 단 세 명 뿐 이었다.
2.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
유치장은 참 자유롭고 편안했다. 이말을 이해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해방된 기쁨 같은 것이 있었다.
내가 쓴 자술서 이외의 활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성경책 그리고 몇 년 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유치장에 있을 법 한 책이지만 반가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북적이는게 안도감을 주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증인으로 살고, 인간이란 유적 유대감으로 자아를 확인하는 존재가 아닌가 싶었다.
새파랗게 젊은 담당 형사는 나에게 “야, 너. 19살인데 국가 보안법이야? 엥, 너 간첩이냐?”
모든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란 딱지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가 되고 있었다.
“아니에요. 학생인데 이만 저만해서 들어왔어요.”
나이가 70이 넘은 사기 전과 18범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이 영감탱이 또 들어왔냐? 여기서 송장 치르라고? 이 노인네 정신 못 차렸네.”
라고 빈정거렸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제 고 문을 받거나 다시 끌려가지는 않겠지, 이 창살이 나를 보호 하겠지’
이런 안도감 속에서 몹 시 추운 마루 바닥에 간통죄 아주머니와 모포를 나누어 덮고 술주정꾼과 취조하는 형사들의 악악대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하루 잠을 청했다.
유치장 담당 전경은 나의 처지를 이해 하고 약과 책도 슬쩍 넣어주고 아버지에게 전화도 해 주어 너무나 고마웠다.
맥적은 형사는 간통죄로 들어온 유부녀와 총각을 약 올리며 여자 잘 후리는 법을 강의하다 음담패설도 질렸는지 노래를 시킨다.
“오늘은 유치장 감방 대항 노래자랑을 한다. 알겠나.”
나는 사회에서 추방된 우리 모두를 기억하며 노래를 불렀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이때쯤 나는 눈물이 가슴까 지 먹먹하게 차올랐지만 울지 않았다. 철이 들면서 부턴 울지 않고 인내 하는 것이 내겐 더 자연스러운 미덕이 되어있었다.
모아놓은 구름은 더 이상 감당 할 수 없을 때 가슴을 적시 는 비가 된다.
아직은 울 때가 아니었다.
한 알의 작은 씨앗이 땅에 묻혀 새싹을 틔우고 작은 나무가 되어 비바람을 흠뻑 맞으니, 아침 해가 떠오르는 듯 삶의 이유들이 나를 강하게 단련시키고 있었다.
“앵콜, 앵콜” 그들의 목소리가 쟁쟁거리며 울리는데
‘배움의 기회가 적고 저임금에 허덕이는 저 사람'들이 책으로 본 민중임을 새삼 실감했다.
오직 부유함과 관리 속에서 자란 온실의 화초에서 한발 세상으로 나오니, 자유를 한스푼 먹은 유쾌함이 있었다.
그들은 '유치장에 들어 온 것은 잘 한 일이야. 이곳에 와야만 했어.'하는 대신
하나 같이 이곳에 들어온 것을 억울하다는 하소연으로 가득했다.
'민주화는 어디까지 인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지.....?’ 의문이 쌓여가는 시간이었다.
3. 검사가 부르는 날.
검사가 부르는 날은 외출을 한다.
나와 함께 유인물을 돌려 구속된 진숙이는 공범이란 이유로 대전경찰서에 있었다.
검사를 만나는 날은 그녀를 만날 수 있고, 세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호송차를 타고 수갑 찬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다 차창 밖을 보니 차 유리 안쪽과 밖은 다른세상처럼 느껴졌다.
검사를 만나러 가기 전에 우린 법원에 있는 작은 감방에 각자의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추웠다. 시멘트 바닥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어떤 사건이 일어 나길 기다린다는 것의 지루하고 고된 시간은
‘내가 나의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 느낌’ 이라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난 그때 이런 기다림이 앞으로 몇 십 년 후까지 계속 되리란 사실 을 알지 못했다.
자신이 꿈꾸는 것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스스로가 고여 썩어간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10여년 더 흘러가야 했다.
내가 내 배의 주인이 아니니 누군가가 노를 저어주길 기다리며 사는 무기력감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매번 진숙을 만나면 아픔이 몰려와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대학에 수석으로 들어온 그녀는 아주 영리하고 명랑한 친구 이었는데 두 손에 수갑을 차고 깡마르고 초췌 하여 눈빛조차 흐 려져 있었다.
‘아, 이런’ 내 모습도 별 수 없었겠지만 우린 형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두 달 만에 우린 너무도 엄청난 변화를 겼었음을 서로를 보며 확인 하는 순간이었다.
유치장에 머무는 법적 기한은 14일 정도인데 나는 20일이 넘도록 교도소로 사건이 넘어가지 않고 있었다.
장기투숙자가 되어 담당형사와도 정이 들어갈 무렵 검찰에 가서 조사를 받다가 그만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고 말았다.
나의 아버지였다. 범죄자가 사용하는 계단은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일반 계단으로 총총히 사라지는 낯익은 어깨와 무거운 외투자락을 보고 말았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셨다며? 대통령 표창까지 받으셨는데....... 내 참, 너는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네.
이 자술서에 기술된 것은 모두 사실인가?” “아닙니다.
고문에 못 이겨 만들어진 것입니다.” “너희들 나이도 어리고 초범인데다가 ....... . 너의 아버지는 매일 오셔, 매일. 진정서하고 반성문까지 써가지고. 나도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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