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여 물로 배를 채워야 했던 친구의 어린시절 이야기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으로 기본 삶도 누리지 못하는 어린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나의 역사의식의 시작이었다.
해결적 대안은 책 몇 권으로 답을 내릴 수는 없었던 시기였다.
다만, 그들의 손에서 나는 점점 ‘국 가보안법 7조’를 위반한 간첩에 준하는 중범죄로 결론이 내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난 단 한 번도 사회주의와 북한에 대해 찬양 한 적이 없었다.
날짜를 기억 할 수도 없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한 뼘 정도 지상으로 연결된 유리창으로 첫눈이 날리고 있었다.
‘이번 가을을 잊었구나.’
쓸쓸한 마음으로 눈 발을 보고 있는데 복도에 있던 전경은 신이 나서 그 당시 유행하던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노래를 흥얼거렸다.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입장이 이렇게 다르니 그 노래가 처량하기도 하 고 난 고뇌에 쌓여 있었다.
‘젖먹이 때까지 기억해 내야 나간다.’ 는 그들의 구호를 볼 때마 다 거짓말로 진술한 것이 늘 걱정이 되었다.
왜냐하면, 1980년 4월 19일, 나를 이끌어 주던 사학과 선배가 나에게 4.19학생정신을 계승 하는 글을 써서 학교에 뿌리라고 은밀히 부탁했었다.
그런 일은 실형으로 징역 2년 정도 살 각오를 하고 주변의 인간관계를 정리하면서 아주 비밀리에 하는 일이었다.
좀 두렵기는 하였지만 내가 신뢰하는 선배의 부탁이고 필요한 일이기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내용으로 열심히 작성하여 여성으로 이루어진 스터디그룹멤버들과 등사기로 손수 한 장씩 밀어 문과대와 법과대 경상 대에 나누어 뿌렸었다.
눈치로 보아 그 선배가 잡히지 않은 것 같아 나 혼자 한 것으로 거짓말을 하며 철썩 같이 버티고 있었다.
만약 사실이 드러나면 나의 어린 후배 들이 이 고초를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차마 말 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잠만 들면 악몽 에 시달리고 비밀을 지키려니 엄청난 신뢰와 힘이 필요했다.
조사가 막바지에 이르러 갑자기 며칠씩 아무도 오지 않았다. 시끄럽던 옆방의 사람들이 어디론가 끌려가 사라지고 대공 분실은 텅 비어 정적만이 계속 되었다. 복도에 전경만 교대 로 지키고 있을 뿐, 철제의자에 덩그마니 앉아 하루 종일 그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어야 하는 고통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반쯤 넋이 빠진 12월의 어느 날, 담당 형사가 들어 왔다.
“옷 벗어”
담당형사의 열 받은 목소리는 즉시 물고문으로 이어지고
“너! 너! 너! 광주 사태 때 총을 숨겼다며……. 이년이 너만 말 안하고 여기서 나갈 줄 알았어?” “.......”
“순해서 봐 줬더니, 이게!?” 처음 고문을 당할 때는 어떤 고통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지만 또 다시 고문실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는 고통과 두려움이 한 순간에 눈 덩이처럼 커져 나를 짓눌렀다.
‘아, 이젠 더 못 버틸지도 몰라. 차라리 죽는 편이 낳지.’
흩뿌려지는 차가운 물 파편 너머에서 가물가물 누군가 내게 소리쳤다.
“너만 왜 말 안 해? 이년아! 내 얼굴이 뭐가 돼? 다른 후배들 다 조사해서 훈방 조치했는데 너는 왜 거짓말 하냐?”
‘아 그랬구나, 그것도 모르고 이곳에서 보낸 50일간 그걸 가리느라고 피가 다 타들어 가는 것을 .......
결 국 이렇게 끝날 일이었구나,
선배는 어디서 무얼 할까. 이게 꿈은 아닌지.’ ‘4.19 학생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전단 살포를 지시한 그 당시 우상에 가까웠던 선배 는 지금은 모대학교수가 되어 있다.
이 사건 후 그는 도피 생활을 마치고 자수를 하여 처음 만났을 때 너무나 반가웠다.
허나 그는 여전히 무언가 거리를 두고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생각으로 가슴을 죽인 사람들을, 지식으로 실재를 놓친 사람을 추종한 시절이었으니 나는 어쩔 수 없는 온실 안의 화초로 세상 물정을 너무도 모르는 구석이 많았었다.
나의 정의감과 반항심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세상을 바꾸려는 것은 개인적인 불만은 아닌가?
삶의 여행은 의문을 담고 거센 바다로 흐르다 작은 섬에 멈추어 섰다.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자유로워지는 길은 무엇인가?
생존에 허덕이며 평생을 자본주의의 틀에서 꼼짝도 할 수 없는 다수 국민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몰려오고
대공분실은 텅 비어 나 혼자 (아니 밖에 날 지키는 전경) 남게 되었다.
하루 이틀 삼일...... 아무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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