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깨달은 자 즉 붓다보다
아래 단계로 보는 것은
신을 아는 것은 하나에 도달한 상태이고
깨달음은 영에 도달한 상태로 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도
신 자신이 나는 있는 자 그로다
라고 하고 있지 않은가.
존재를 일컫는 말이 신인 것이다.
차크라로 설명하면
이마 차크라가 열려야 1 즉 하나를 알며
정수리 차크라가 열려야 0을 알게 되는 것이다.
수학에서도
영의 발견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0이 있기에 어떤 숫자도 표현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존재와 비존재를 함께 아우르는
말이 깨달음인 것이다.
나는
깨달음이란 용어를 0을 안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예수는 깨달음 대신 거듭남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도마복음은 거듭남에 관한 기록이다.
성경에서의 죄는 에고로 해석하면 된다.
거짓나가 에고인 것이다.
예수가 말하는 회개도
나는 에고가 아니다
를 아는 것이지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예수는
에고가 죽는 과정을 회개라고 한 것이다.
즉
에고를 내려놓는 것이 회개이다.
그렇다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있다.
는
거짓나인 에고를 내려놓아라.
그러면 진아 즉 참나에 이른다.
로
풀이하면 된다.
나는
공이나 영이나 도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이르는 길은
에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물론
우선은 에고를 키운 후
그다음 에고를 버리는 과정은 필수이다.
이것이 거듭나거나 깨달은 사람들이 걸은 길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존재를 사랑
도나 영을 자유라는 단어로 표현하길 좋아한다.
또한
하나에 도달한 것을 견성이라하고
견성한 사람은 보살이라 하고
영에 도달한 것을 성불
성불한 사람은 부처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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