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것
참사랑은 존재에 대한 긍정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의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올인 한다. 어미가 자식을 사랑할 때가
바로 그렇다. 자식의 몸 상태는 물론 마음 즉 말에 대해서 더 나아가 그의 행복과 즐거움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관심을 가진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면서 내가 뱉은 말에 대하여 소홀히 한다면 이는 사랑이 없다고 인정해야 한다.
잔소리가 시작되었을 때는 이미 서로의 사랑은 식은 것이다.
사랑은 말은 물론 느낌과 감정조차 읽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배려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 전부를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
몸을 보살피고 사랑하기는 가장 쉽다. 그러나 마음을 사랑하기는 좀 더 어렵다.
자기만의 의견을 고집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더 나아가 존재랄까 의식을 사랑하기는 정말 어렵다.
이는 기쁨과 웃음과 행복의 길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주어져 있다.
단지 누릴 줄 알면 된다.
그런데도 어렵다.
즐기는 법을 배우지 않은 탓이다.
그러면서 욕망을 통해서 행복과 기쁨을 찾고자 한다. 여기서 빗나가기 시작한다.
이는 몸과 마음의 길이다.
욕망을 통해서는 몸과 마음은 호강을 누리고 즐거워할지 모르나 의식은 배고프고 슬프다.
그래서 영혼의 양식은 사랑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물건이건 식물이건 동물 더 나아가 어느 누구를 사랑하면 그 상대의 모든 것에 대하여 민감하며 또한 보살핀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아예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과 활동도 깊은 시선으로 보면 모두 사랑받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을 아는 방법과 길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만큼 있다.
오늘 아침 가발공장 여공에서 하버드 박사가 되기까지의 서진규의 자서전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를 읽으면서 새삼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음을 강하게 느꼈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지도 모른다. 매일 신문과 라디오나 TV 방송에 나오는 뉴스를 들어보라,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가, 라고. 나도 전에는 그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흔한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즉 그 가치를 모른다는 말이다.
마음이란 있는 것에는 관심을 거의 가지지 않는다.
오직 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며 또한 그런 것을 구하려고 아우성이다.
그래서인지 이미 충만한 것인 사랑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사랑 아닌 것 또는 잘못된 것에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잡지사나 신문사나 방송국에서도 독자나 시청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다루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남을 비난하거나 흉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는 내면 깊은 곳에서는 모든 이가 신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지난날들을 보아도 그렇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아도 세상과 우주는 사랑의 에너지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직 눈뜨지 못한 장님이기에 그렇다.
예수가 얘기하는 장님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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