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이
물리적 거리로 따진다면 모자의 사이보다 더 가까운 사이는 없는 것 같다.
어머니 뱃속에 들어 있었으니 말이다.
다음으로는 부부사이이리라.
그러나 인간 사이 거리를 측정하는 또 다른 요소로는 심리적인 거리가 있다.
얼마나 뜻이 통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동지同志라든지 동기同氣따위가 그것을 말해준다.
그렇지만 가까운 사이가 되면 우정이 싹트거나 사랑이 생길 것이라고 보지 말아야 한다.
단지 가까워짐에 따라 서로의 내면 상태를 나타낼 기회가 늘어날 뿐이다.
다음으로 가까운 사이란 존재로의 여행에 도움을 주는 사이이다.
또한 이것만이 진정한 우정이다.
이는 보살피되 절대적인 자유를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모든 것에 스며있는 것이 존재가 아니던가.
그러므로 존재하면 할수록 둘 사이의 거리란 있을 수 없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이 바로 존재에의 접근이며 이는 또한 사랑과 자유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찌 이때 가까운 사이라든지 먼 사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
내가 신임을 아는 순간, 또는 존재에 도달하는 순간 가까운 사이도 먼 사이도 없어지는 것이다.
내가 그것 자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존재에 이를 때 비로소 내가 구하거나 찾는 것을 나는 이미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와 존재 사이의 거리가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이는 우리가 사는데 바쁘고 행위 하는데 바쁘고 욕망하는데 바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들을 이미 가지고 있음을 보지 못하는 것이고 따라서 거들떠보지 않는데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사실은 무지 때문이다.
구한다는 것은 아직 자기가 가진 것을 모르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따라서 구하는 것을 누리거나 맛볼 수는 없는 것이다.
지복이 그렇고 자유가 그렇고 사랑이 그렇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만이 진짜이고 진리이다.
이는 구하는 것이 아니고 누리는 성질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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