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우린 모두 행복과 자유를 원한다.
우린 모두 뜻을 세우던 아니던 구도의 여행을 하고 있다.
조금은 더 행복해지고 조금은 더 마음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것이 구도와 다를 것이 없으므로.
그렇게 나를 일깨우던 삶의 순간에는 스승 무위 박연호 신부님이 늘 함께였음을 그분이 돌아가시고서야 더욱 명확하게 느껴졌다. 늘 깨우침은 시간과 마음이 필요하다.
수수께끼 같은 나의 배는 바람 따라 낯선 곳으로 떠나기도 하고 가슴의 항구로 다시 되돌 아오기도 한다.
여행은 풍경화처럼 고요하기도 하고 폭풍우처럼 거센 고통과 절망, 순수와 사랑, 인위와 무위가 왔다가 사라져 간다.
한 방울의 물방울이 똑 떨어져 강물에서 다시 바다에 이르는 파노라마 같기도 하다.
그 물방울은 지금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신비로운 해답을 돛대에 달고 항해는 계속되고 있다.
두리번거리다 보니 노을이 지는 평화로운 바다에 홀로 용솟음치는 삶의 가을을 맞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 글은 1999년 12월 떠난 1차인도 여행과 2000년 7월에 떠난 중국여행과 2007년 몽고 여행, 그리고 다시 2007년의 2차 인도여행으로 이루어진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겐 흥미 있는 여행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이글이 조금은 장황한 나와 내 주변 지인들에 대한 주관 적인 생각의 기록이 되리라 짐작 된다.
여행기를 읽다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와 성장 혹은 사회적 지위 등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글에 가려 잘 볼 수 없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커지면 이런 색깔과 향기를 전하는 여행자는 어떤 사람일까?
이 여행이 그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더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의 관심은 어디서 무엇을 보았는가 보다는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있다.
그래선지, 나는 여행지의 풍물 등을 소개하기 보다는 삶의 이야기와 느낌을 중심에 두고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이 여행에 함께한 모든 분들께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속삭이고 있다.
2) ** 몽고 여행 가자! **
2007년 봄, 오랫동안 인연을 맺고 있던 무위의 홈페이지(muwee.egloos.com)에 새로 실린 글을 보다가 ‘7월에 몽고여행 갈 사람은 함께 가자’는 글을 보았다.
그는 예천의 허리골 산 속에 살고 있는데 노자의 ‘무위자연’사상에서 길을 찾아 몇 년 전부터 스스로 무위라 이름 지은 분이었다. 인도의 신비가 오쇼 라즈니쉬와 라마나 마하리쉬를 컴퓨터로 합성해 놓은 듯한 그는 오쇼 라즈니쉬 보다는 여성적이고 라마나 마하리쉬 보다는 남성적인 느낌이랄까?
1943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서울대 수학과를 수석으로 합격하고 졸업한 후 선생님을 하다 신부의 길을 택하였으나 15년 전,기존의 종교체계에 한계를 느껴 환속하였다.
신부 재직 시 노자와 다니꾸찌 마사하루, 오쇼 라즈니쉬, 마하리쉬 등의 책을 보며 진리를 향한 내면의 여행을 하였다 한다.
그런 그를 만난 것은 30여년 전의 세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위를 우린 편하게 신부님이라고 불렀다.
이 글을 보면서 순간 ‘가야지’ 싶었지만 여행경비와 지금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처리 등이 한꺼번에 짐스럽게 떠올랐다.
‘아무래도 안 되겠지? 방학 시작하니 아이들만 보낼까?’ “나래야, 재민아 7월에 신부님이 몽고 가자는데 너희 갈래?” “몽고? 해외여행 우리도 가는 거야? 정말?”
“엄마 못 가면 둘이라도 신부님 따라 가면 안 될까?”
“에이, 그럼 안가.”
“새들을 어쩌고? 엄마가 갈 수 있을까?”
나래는 고등학교 진학 3개월 만에 목을 조이는 수행평가에 질려 독학을 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대입시 준비 중인 상태이고, 재민은 중 3 이니 현장체험학습을 신청하면 될 일이었다.
‘나는?’ 대전에서 3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조용한 시골, 집이 세 채 뿐인 작고 조용한 마을에 살며 왕관앵무새를 키워 아이들 교육비 좀 보태볼까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새 13쌍과 아가 새들, 개 두 마리가 열흘 간 죽지 않게 모든 것을 세세히 신경 써야 하는데....... 여름이라 열흘이면 새들 먹을 물이 썩을 텐데?
작년에 2박 3일 제주여행 다녀오니 비에 젖은 새장 판자가 느슨해진 틈으로 두 쌍의 어미 새가 갓 태어난 아기 새를 두고 빠져나가 돌아오지 못해 죽었었다. 여름엔 한 참 왕성한 번식기인데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알에서 깨어나 15일 정도가 된 아가 새를 이유식을 먹여 사람과 친숙한 애완조로 만들어 분양 하는 것이 그 당시 나의 일이었다.
15일 이 지 난 새는 길들이기도 힘들고 번식조로 분양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8년 전 1999년 12월, 나는 인도 여행을 갔었고 그때 여행을 마치면서 남긴 숙제를 기억해 냈다.
여행 중에 아이들에게 전화를 하니,
“엄마 언제 와? 재밌어?”하던 아이들의 축축하고 슬픔에 젖은 목소 리가 가슴이 저리도록 우울하게 하였었다.
‘나의 아이에게 평화와 행복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준 것은 이혼의 아픔과 욕망의 억압 뿐 이구나. 언젠가는 너희들과 꼭 여행을 함께 나누며 마음을 여는 날이 오기를.’나는 바라고 있었다.
까마득하게 잊은 숙제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어느 정도의 어려움은 시나브로 사라졌다.
매 시기에 우리에게 찾아 오는 행복과 성취의 기회는 얼마나 소중한가! 번번이 이런저런 핑계로 습성에 안주 하면서 불평을 일삼게 되는 어리석음을 얼마나 많이 보아 왔는가!
방향을 잡고 결심을 하면 어려움 속에서도 지혜가 고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세요. 어떤 혼란 속에서도 평화가 숨 쉬고, 어떤 고통 속에서도 사랑이 당신을 기다리며, 어떤 난관 속에서도 길이 있답니다. 당신이 조금만 더 마음을 비우고 조금만 더 용기 있다면 그 틈을 발견할 거예요.’
이렇게 나 자신에게 속삭였다.
참숯을 구해 물에 담가 먹을 물이 썩지 않는지 실험해보고 야채는 키워 뿌리 채 캐서 새가 먹도록 바닥에 놓고 모이도 충분히 주고 새의 분양 시기를 조절하는 오랜 준비에 들어갔다.
박연호 신부님과의 여행은 그분의 밝고 사랑스런 에너지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에 포기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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