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벗은 신부 박연호(사랑과 자유)

박연호 신부의 책 -세상의 모든 기쁨 중에서

리라568 2023. 11. 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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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행복이구나 



사는 게 즐겁고 아름답고 가치 있고 행복하구나.

아이를 키우는 것이 이렇게 쉽고 행복한 일인데 왜들 어려워하지, 하면서 엄마학교란 책도 내고 엄마학교도 연 서형숙. 

그녀는 만나는 무엇에나 사랑을 퍼부을 줄 아는 여인이다. 사랑하니 행복하고, 사랑은 정신의 양식이니 아이들이 잘 자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사랑은 병을 고쳐줄 뿐 아니라 살아있게 하며 행복의 문을 열어준다. 

가치와 아름다움도 창조한다. 

이러니 하느님은 사랑이다, 라는 말도 있는 것이겠고. 

그렇다면 천국도 사랑이 있는 곳이라고 해야 하리라. 

살면서 부딪치는 모든 사람이나 생물, 물건 또는 일에 사랑을 쏟아부어보라.

사랑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면 사는 게 행복이라는 것도 곧 알게 된다.
사랑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사랑



사랑이란 말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기본 필수 단어이다. 

사전에는 1. 아끼고 위하며 한없이 베푸는 일

 2. 남녀 간에 정을 들여 애틋이 그리는 일 

3. 동정하여 너그럽게 베푸는 일 

4. 어떤 대상이나 사물을 몹시 소중히 여김 

5. 긍휼과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은총, 이라 나온다. 

어머니 사랑, 부부의 사랑, 이웃사랑, 꽃 사랑, 하느님 사랑 등으로 그 용도가 다양하다.

나는 사랑을 진리와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를 특히 강조하고자 할 때 참사랑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도 같은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오쇼는 <사랑, 자유 그리고 홀로서기>란 저서에서 사랑을 의식의 산물로 보고 있고,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사랑은 생리적 욕구 중 하나라고 밝히고 있다.

사랑을 몸의 차원에서 보면 생리적인 욕구를 뜻하지만 마음의 차원에서 볼 때는 인격적인 면을 보게 되어, 자존심을 지켜주거나 내 뜻을 존중하여 따라 주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사랑도 마음의 차원에서 볼 때, 하느님을 아버지로 즉 인격적인 대상으로 간주하여 구하거나 매달리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의식의 차원에서 보면 아버지라기보다는 진리나 자유나 사랑이란 말로 대치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을 인격적인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문제이다. 

이때 사랑이란 에고 사이의 거래이고 거짓이고 사기이기에 그렇다. 

단지 존중받고 인정받으려는 욕망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참사랑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도 다들 사랑으로 키우는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자기, 즉 불행과 욕망, 폭력 등을 전해주고 있을 뿐이다. 

사랑만이 사랑을 낳는다고 하지 않는가. 

이래가지고는 평생 환상과 꿈속에서 살게 될 뿐 참사랑이 무엇인지 눈뜨기는 영 틀린 것이다. 

그렇다고 절망할 것까지는 없다. 

누구에게나 빠짐없이 그 내면에 꼭꼭 숨어있는 것이 바로 사랑과 자유가 아니던가.

그러므로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라면 진실만을 바라야지, 칭찬을 바라거나 야단을 안 맞으려고 해선 곤란하다. 

물론 칭찬이란 에고를 강화시켜주는 요소인 것이다. 

그러기에 진리의 스승은 있는 그대로를 밝히려 할 뿐, 칭찬이나 비난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이들은 둘 다 에고의 영역이기에 그렇다. 

만약 칭찬하려면 에고를 버릴 때뿐일 텐데, 무심의 상태에 있는 사람을 칭찬하거나 비난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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