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재밌는 전자책/우리는 신이다.

자유롭고 싶다면 주목,숙고.

리라568 2023. 5. 2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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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끄러워! 조용히 해!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것이 무엇인줄 아는가. 에고이다. 그래서 에고에 둘러 쌓여 있다보면 누구나 지치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사람의 존재는 그가 있을 때보다 그가 없을 때 더 잘 드러난다. 그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느껴진다면 그가 바로 시끄러운 사람이다.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고 있는 단어로 <사랑>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단어를 존재로 향하게 하는 안내 역할 또는 존재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로 사용하고 있는 데, 사람들은 에고를 서로 추켜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이런 사랑은 차차 서로를 파괴한다.

부모의 자식 사랑도 그 부모가 에고가 사라진 사람이 아닌 한, 자식의 에고를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 

세째딸이면 무조건 며느리로, 보지도 않고 데려오라는 말이 있는 것도 다 부모의 지나친 관심과 시선이 에고를 키우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니 부모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자랐다고 해서 불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존재에 이르는데는 큰 보탬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남의 관심을 받기를 바라는데, 에고의 시선이란 에고를 키우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시선과 관심을 받지 않으면 에고가 자라지 않는다. 

순박하다는 의미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유명인사가 된다는 것이 좋은 일이 못된다. 유명해질수록 에고만 자라나고 본래의 모습을 점점 잃어간다.

인간의 시선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자연도 본래의 모습을 잃고 만다. 

산의 서기가 사라진 것이라든지 동물원의 동물이 생기를 잃은 것도 다 인간<에고>의 시선 때문이다. 

야생동물이나 야생화가 아름답고 생기가 있는 것은 바로 인간의 시선을 받지 않고 자란 덕이다. 

에고에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특성이 있기에 그런 것이다.

 

 

 

2.집 주인의 귀가



주인이 집을 비워 보라. 

우선 하인이 날뛰기 시작한다. 여기서 하인이란 에고를 일컫는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에고와 마음을 동의어로 사용하여 왔으나 이제부턴 주인과 함께 할 때의 에고만을 마음이라 부르겠다.

주인이 없으면 에고는 우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시작한다. 

이는 교실에 담임선생님이 없을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 이때부터 집안 일은 엉망이 된다. 

주인의 흉내도 내보고 별 짓을 다 해본다. 

그러다가 결국 에고는 자신이 주인이 되고자 시도한다. 

이것이 소위 깨달음을 구하는 것이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찌 하인이 주인이 될 수 있겠는가.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다.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 즉 주인의 귀가가 깨달음인 것. 주인이 돌아오는 날은 하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주인의 마음에 달린 문제인 것이다. 

주인이 귀가하면 이때부터 마음의 할 일은 주인이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돌아온 주인이 주는 여러 선물과 혜택을 챙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때까지 하인인 에고로서 할 수 있는 것이란 없다. 집안을 쓸고 닦고 기다리는 일뿐이다. 

하인이 열심히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주인이 빨리 돌아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집주인이 끝내 돌아오지 않아서 하인이 주인역할을 하고 있는 집도 많다. 

이들은 아예 주인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돌아온 주인을 쫓아내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를 쫓아낸 것을 보라.

 

 

3.출가의 의미


<나>의 본성을 자유로 볼 때 나 즉 자유를 찾아 나서는 행동이 바로 출가인 것이다.

지금 있는 곳이 자유롭지 않다면 이곳을 우선 벗어나야 한다.

이것이 진정 출가인 것이다.

홀로 있고자 하는 것도 이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시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홀로 사는 법을 익히지 못하고 자유롭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느 단체에 가입되어 있다.

가정이 그 대표격이다. 그런데 여기서 누가 우두머리인가를 중요하다.

나를 알아가거나 깨어나기 위해선 그 우두머리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술을 먹거나 집으로부터 떠나 있고자 하는 것도 자유에 대한 갈망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 여성들도 사랑의 이름으로 남자를 붙들려 하지 말고 스스로 남성화의 길을 걸어보라.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때 남성들도 여성화의 길을 걷게 된다. 그게 조화이니까.

그러므로 어떤 단체든 욕망을 이루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즐겁게 사느냐로 우두머리를 정해야 즐거운 분위기가 된다.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것은 의식이 낮은 사람이 취하는 태도이고 자유롭고 즐겁게 사느냐는 의식이 높은 자가 취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은 가정에서는 지금부터라도 누가 가장 의식이 높은 자인가를 따져보고 가장을 새로 정해 봄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그 가정에선 무단 가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전생도 있다고 보면 육체의 나이나 그가 하는 역할만을 가지고 가장을 결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에 해당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사람이면 가장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

이것도 자유의 한 종류이니까.

물론 먹는 것으로부터의 해방도 따져봐야 한다.

즉 적게 먹는 것 아니 적당히 먹는 것도 중요 요소이다. 이는 육체만을 위한 삶에서 벗어난 증거이니까.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니까 많이 먹는 것이다.

또한 적게 먹으면 먹고 사는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다.

무릇 종교단체란 의식의 성장을 목표로 하는 집단이다.

그러므로 그 단체의 우두머리는 의식이 가장 높은 자가 되어야한다.

그렇지 못할 때 출가가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