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기쁨 (전자책)

세상의 모든 기쁨 (전자책) 종이책 절품 중에서

리라568 2025. 3. 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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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 박연호 신부님은 60세에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절대의 사랑을 조건없이 베풀어 주신 삶을 살았습니다. 어떤 스승도 없이 ‘나는 누구인가’등을 평생 탐구하시며 라즈니쉬와 마하리쉬 노자등 선각자의 향기를 통해 자기 구원과 자유를 내면에서 발견하고 진리 안에서 기쁘게 사셨습니다. 많은 선각자들이 나름 각각의 향기가 있겠지만 박연호신부님은 내면의 행복과 기쁨의 샘이 마르지 않는 놀라운 에너지를 밝게 드러내신 드문 분이었습니다.

혼자 산속에서 은거하시며 깨달음 속에서 자유와 사랑으로 일생을 살며 쓴 글들 모음입니다.

서울대 수학과를 수석으로 졸업, 해군장교로 복역후 성신여고 등에서 교편을 잡다 신부로 살다 카톨릭의 한계를 견디다 못해 자유를 찾아 소박한 산속 생활을 함.

78세에 돌아가심. 책으로는 (깨달은자의 노래) (우리는 신이다) (세상의모든 자유) (세상의모든 기쁨) (세상의 모든 사랑) (지금,여기) (세상이 내뜻대로 되지 않는 이유) (너는 왜 행복을 놓치고 있는가?) (누구나 깨달은 상태로 태어난다) (사랑에 눈 뜨면 행복하다) (아무도 지옥가지 않는다) (깨달은 자의 마지막 노래) 등이 있음.

 

 

 

(30) 고마워하라, 기뻐하라, 웃어라.

 

모두들 이렇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억지로라도 이들을 실천해보고자 하기 도 한다.

 

그러데 이들은 우리의 자연스런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잘 살펴보라.

존재계의 도움과 보살핌 덕분이다.

여기서 예외는 없다.

모든 사람들 동식물들 광물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살아왔던 것이다.

오늘도 그럴 것이고, 내일도 그들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매일 매일을 감사하면서 살 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주어진 혜택을 즐기거나 누릴 때 기뻐한다.

먹을 때 노래할 때 걸을 때 잠잘 때 언제나 기뻐할 수 있다.

이들이 모두 우리에게 주어진 혜택이 아니고 무엇인가.

찾는 자세를 지니고 있기에 혜택이 안 보이는 것이다.

인간은, 없어져보아야 그 존재의 가치를 알아본다.

또는 고장 나거나 아파야 그때 비로소 그 가치를 알아본다.

그러다가도 고치거나 나으면 다시 잊는다.

주어진 것을 사용하거나 애용하면서 즐긴다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된다. 마음을 비우거나 내려놓아보아라

그러면 저절로 웃음이 나올 것이다.

사랑하거나 행복해도 웃음이 저절로 난다.

마음을 비우고 존재 계를 바라보면 신비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사랑과 행복과 웃음으로 가득 차 있음도 알게 된다. 그래서 웃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감사하고 기뻐하고 웃고 사는 생활은 어떤 종교를 가지느냐 아니냐 와는 무관하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다만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그 종교의 창시자의 도움을 받겠다는 의사표시일 뿐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잘 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은 어떤 종교든 상관하지 말고 종교에 입문하기를 권한다.

일예로 연예인 출신 김정식 목사의 간증을 들어보라.

삶이 신비요 축복이요 행복임을 알 수 있으리라.

물론 죽음도 그렇다.

 

(31) 겸손과 겸허.

 

어제 오늘은 황창연 신부의 행복 특강을 동영상으로 들으면서 지낸다.

 

나는 삶을 살아가는 두 자세로 지혜와 사랑을 든다.

신념과 신앙을 또는 희망을 대할 때는 사랑의 태도로 하고

지식을 이용하는 자세로는 지혜를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신념이나 희망도 필요하고 더욱 현대에는 지식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사랑과 지혜에 따라 엄청 달라진다.

자연과 인간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서 우리는 그대로 보답을 받는다.

 

더 나아가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로는 겸허를 든다.

이는 겸손과는 다르다. 겸손은 어떤 목적 때문에 또는 예의상 자신을 낮추는 것이고

겸허는 있는 그대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한다.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지구 역사로 보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마치 지구의 주인인양 우쭐대면서 자연과 동식물을 파괴하면서 살고 있다. 심지어 인간까지 파괴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긴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없어지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인간도 언젠가는 모두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되어 있다.

인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 사실을 직시하고 살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자세가 바로 겸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자세로는 겸허밖에 없다.

즉 삶을 신비와 축복으로 받아들이면서 사랑과 지혜의 자세로

감사와 기쁨을 지닌 채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다.

동식물이 그렇지 않는 가. 그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겸허의 자세를.

나도 개와 같이 생활할 때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32) 외부는 내면의 그림자

외부의 기쁨이 오래 가지 못하는 이유다.

슬픔도 같다.

또한

어떠한 외부의 슬픔도

내면의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이는 빛과 어둠과의 싸움과도 같다.

빛이 오면 어둠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

죄나 악도

그림자요 어둠으로

빛이 오면 사라진다.

어둠은 빛의 부재일 뿐이다.

영원히 목 마르지 않을 샘물은

내면에 있다.

외부의 물은

잠시 갈증을 잠재울 뿐이다.

마음도 진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림자는 곧 사라질 운명이다.

그림자를 추구한다면

그 삶이 어찌되겠는가.

그 결과가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마음을 섬기고 살고

밖의 바람 즉

욕망의 추구는

모두 그림자, 즉 허구와 허깨비를 쫓아가는 삶이다.

언제까지 여기에 속아살 것인가.

그래서 어느 선사는

매일 “주인공아.속지마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하지 않는가.

외부의 스승도 그림자이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촉매나 산파의 역할을 하는데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부활 신앙의 약점은

외부 사건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이도 그림자이다.

홀로 있어도 기쁘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기뻐야

내면에서 나오는 참된 기쁨이다.